-2021 크리스마스 합작-
크리스마스가 왔다고 해서 제 일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병실도 관리해야 되지, 복도 대걸레질 해야 되지, 여기저기 소독해야 되지... 그 외에도 해야 될 온갖 잡일이 많아요. 휴일이라고 사람들이 안 아픈 것도 아니니까, 병원은 계속 바쁘게 돌아가죠. 게다가 이 병원 상황이 어떤지는 당신도 잘 아시다시피, 가뜩이나 일손도 부족한데 겨울이라서 환자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오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크리스마스날 출근해서 일하고 있잖습니까. 병원이랑 환자들을 위해서라는 건 입 발린 소리고, 추가 수당 준다길래 이러고 있습죠. 전 사실 돈 쥐꼬리만큼 더 받는 거보다는 간만에 좀 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 월급으론 별로 넉넉한 편이 아니라고요. 그래도 올해 크리스마스는 조금 나은 기분으로 일하고 있어요. 어째선지 얘기해 드릴까요? 흥미가 있으시다면요.
아시다시피 어제 오전에 눈이 잔뜩 내렸지요. 눈이 오면 아이들은 눈 속에서 노느라 신날 거고, 몇몇 사람들은 온통 눈으로 덮인 풍경을 보며 그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겠죠. 하지만 저한텐 눈이란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에요. 눈이 오면 바닥이 온통 눈 녹은 물로 진창이 돼서 평소보다 더 자주 닦아줘야 하는 데다가, 눈이 꽁꽁 얼어붙기 전에 제설도 해야 하니까요. 또 구급차가 들어와야 하니까 도로가 얼어붙지 않게도 해야 하고요. 진짜로 힘들다고요.
어쨌든,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죠. 그 날 전 병원 건물 주변의 눈을 치우고 있었어요. 거의 다 치워갈 때 쯤에, 눈 쌓아놓은 곳에 뭔가 조그만한 게 반짝이는 게 보이지 뭡니까. 뭔가 해서 자세히 보니까 은색 반지더라고요. 삽에 있던 눈을 그 위에 쏟기 직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었죠. 하마터면 반지가 영영 눈 속에 묻혀 버릴 뻔 했다니까요.
아무래도 이거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나중에 이거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전 일단 반지를 안내 데스크에 맡겨 놓기로 했습니다. 안내 방송이라도 하면 주인이 찾아갈 테니까요.
그런데 반지를 맡기러 가는 도중에, 누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게 들리더군요. 보니까 웬 취객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고요. 병원에 취객이 들어와서 문제 일으키는 건 종종 겪는 일인데, 그런 건 보통 해 진 뒤에 생기거든요. 그런데 저 사람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아침부터 퍼마신 것 같았더라고요. 세상에, 술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더군요. 게다가 그 양반 성질은 또 얼마나 고약한지, 간호사가 그 사람 말리는 데 아주 진땀을 빼고 있었죠.
저랑 간호사랑 둘이서 그 사람을 간신히 내보낸 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그나마 저희 둘 다 별로 안 다친 게 다행이었죠. 성질 더러운 인간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스크루지 영감마냥 막 착하게 굴게 되는 게 아닌 건 알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까지 그런 사람을 상대해야 했다니. 정말이지 월급 좀 더 받아야 되겠다니까요.
그뿐인가요. 그 인간이 난리 치고 간 거 뒷정리도 해야 했다고요. 그거 정리하느라 반지에 대한 건 잠깐 잊어먹고 있었죠. 적어도 그 십대 아이들이 페이지 씨한테 물어보는 걸 듣기 전까지는요.
"의사 선생님, 혹시 반지 못 보셨나요? 은색 반지에요. 아까 놀다가, 아니면 놀고 나서 병실로 돌아갈 때 잃어버린 것 같아요."
둘 중에 여자아이 쪽이 물어보자, 페이지 씨가 대답했죠.
"미안하지만 반지는 본 적 없는 것 같아. 그래도 반지 찾는 것 정도는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이라면 시간이 좀 나거든."
"정말이요? 고맙습니다!"
남자아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셋이서 같이 다른 쪽으로 가 버렸습니다.
전 그 아이들이 찾고 있던 반지가 아까 그 반지인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반지를 가지러 갔죠. 아, 깜빡하고 얘기를 안 한 것 같네요. 아까 그 취객을 말리러 갈때, 손에 들고 있던 반지를 근처 어디다가 올려놓았거든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지 뭡니까. 뭔진 대략 짐작 가시죠? 맞아요, 반지가 없어졌어요.
반지 놔뒀던 곳 주변을 열심히 찾아봤는데 안 보이니까, 정말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솔직히 말하죠, 저 그때 그냥 반지 찾는 거 관두려고 했습니다. 어짜피 제가 반지 찾은 건 아무도 몰랐고, 제가 그걸 굳이 또 잃어버렸다고 말해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