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시 섬의 이야기

파도가 밀려왔다가 갯바위에 부딪혀 무너졌다. 바다 거품이 그에 따라 오고 가면서 그 흔적으로 해초 몇 조각을 남겼다. 누군가가 그 해변의 모래사장을 따라 걷고 있었다. 빨간 로브를 걸친 콜이라는 이름의 젊은 음유시인이었다. 살짝 소금기 어린 찬바람이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콜은 여기 미들시 섬에서 나고 자랐으며, 특히 어린 시절은 이 섬의 전성기에서 보냈다. 자연히 콜은 모험가를 자주 만났고, 어린아이 특유의 붙임성으로 모험가들과 자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무용담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콜은 섬 바깥 세상과 모험가로서의 삶을 동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장기간 모험을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싸움을 잘하지도 못하고 마법 같은 특출난 능력도 없다는 것 정도는 콜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보나마나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시체로 발견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콜은 무술 대신에 노래와 류트 연주, 그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술을 배우는 길을 택했다. 음유시인이라면 던전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보물을 찾아내는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있을 테고, 만약 운이 나빠 몬스터와 마주칠 일이 생기더라도 모험가들에게 보호 정도는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기술을 배우며 자신이 붙자, 그는 기왕 음유시인이 되는 김에 유명해져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자신의 재능으로 유명해져서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자신만의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주리라고 콜은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콜의 생각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여러 가지 문제가 계속해서 이 섬에 콜을 잡아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금전 같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콜은 차라리 해적이나 바다 괴물 같은 이유로 못 떠나는 거라면 그 쪽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섬 바깥세상을 두 눈으로 보겠다는 꿈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빛이 스러져 갔고, 결국 콜의 마음 속에 희미한 깜빡임으로만 남았다. 지금의 콜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노래나 부르는 흔해빠진 음유시인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에게는 노래를 부를 주점 겸 여관이 있었고, 여관 주인 니콜이라는 관객도 있었다. 적어도 니콜은 콜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콜은 니콜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이것은 콜이 미들시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니콜이 콜에게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콜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뱉으며 바다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녁놀이 바다를 자신과 같은 빛깔로 물들이고, 태양은 천천히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콜은 종종 이 해변에 앉아 조용히 수평선을 응시하며, 저 너머에 있는 세상이 어떤지, 이 섬 밖에서의 자기 삶은 어떨지에 대해 자신이 들은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때의 콜은 전혀 알지 못했다. 곧 닥쳐올 운명이 섬 전체를 통째로 뒤바꿔 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섬 밖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그의 소원이 완전히 예상치 못한 형태로 실현될 것이라는 사실을.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는 걸 보며 콜은 슬슬 집에 들어가자고 생각했다. 그가 마을 방향으로 막 뒤돌려던 순간, 콜은 뭔가를 발견했다. 빠르게 하늘을 가로지르는 낮선 붉은 섬광이었다. 그리고 콜은 그 빛이 정확히 마을 중심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왠지 모를 나쁜 예감이 들었다. 석양과도 다른 그 붉은 빛은 너무 부자연스러웠고, 기이하고 소름끼치는 느낌을 뿜어내고 있었다. 콜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갔다. 내심 니콜이 걱정되기도 했고 말이다.

마을로 달려가는 도중, 콜은 또다른 불길한 징조를 발견했다. 엄청난 수의 쥐와 벌레 떼, 그 외 모든 야생동물들이 무리지어 마을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새들도 무언가에 겁 먹은 듯 요란한 날개 치는 소리와 함께 마을을 떠나고 있었다. 동물 떼는 잠시 동안 마을 주변 지상과 하늘을 뒤덮었다가 곧 사라졌다. 야생동물들뿐만 아니라 가축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축들은 마구 날뛰면서, 자신이 매인 줄을 잡아당기고 울타리에 몸을 부딪치며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했다. 콜은 말과 소 몇 마리가 울타리를 부수고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도망친 가축들은 마을의 골목을 휘젓고 다니며 길거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개들은 몇몇은 도망쳤고, 도망치지 않은 나머지는 하늘의 이상한 빛을 향해 마구 짖었다.

붉은 빛을 내는 무언가는 마을의 중심인 광장에 떨어진 것 같았다. 콜은 마을 건물 사이사이를 재빠르게 지나며 광장으로 서둘렀다. 거친 숨을 내쉬며 멈춰선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사람 머리 하나 정도 크기의 붉은 수정이었다. 그 정체모를 수정은 은은한 붉은 빛을 주변에 드리우며 허공에 몇 미터 정도의 높이로 부유하고 있었다.

조금씩 모여들고 있는 인파는 그 다음에야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건 콜뿐만이 아니었던 듯, 수정 주변에는 마을 주민 다수가 모이고 있었다. 광장 주변 건물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도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고, 몇몇은 두려워하며 문을 걸어잠그고 집 안으로 숨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 중 아무도 그 수정에 가까이 가고 싶어하지 않아서인지, 사람들은 수정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간격을 둔 채 멈춰섰다. 모여든 사람들 중에는 니콜도 있었다.

“니콜!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저건 대체…”

“콜이구나. 나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그냥 저게 갑자기 여기로 날아왔다는 건 빼고. 그런데 저거, 여기 떠 있는 채로 별 거 안 하고 있는데도 왠지 안 좋은 느낌이 들어… 대체 뭘까?”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별 일 없었다니 다행이다, 니콜.”